[인터뷰] 트랜스젠더 유튜버 '쌀이없어요' 이예나 > 트젠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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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트랜스젠더 유튜버 '쌀이없어요' 이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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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09:43 1,215 0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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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이랑 떡볶이, 술을 좋아한다. 가끔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상담해준다. 예전에 겪은 재밌는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깔깔거린다. 직업은 수학 강사.

코로나 전까지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친구가 많은 편이다.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도 했다. 때때로 남자친구와 여행도 다녔다. 집에만 있다 보니 살이 쪄서 최근에 운동을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의 운영자, 이예나 씨 얘기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지만 그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되면 뭔가 달라진다.

호르몬치료 등 의료적 트랜지션(성별을 바꾸는 과정)을 거치다 2019년, "출생신고는 (주민등록번호 끝자리 시작번호) 1로 했지만, 사망신고는 2로 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태국에 다녀왔다. 법적으로 성별 정정까지 마치며 국가가 인정한 '여성'이 됐다. 그리고 직업을 잃었다. 꽤 잘나가는 강사였지만, '원래 남자였던 여자' 선생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완전히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시작하면 안 되는 거였나. 굳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필요가 있었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일상을 드러내고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이유가 있나. 

"저는 그냥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이 '별반 다를 거 없네', 그리고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렇게도 사네'라고 생각할 수 있게.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실수도 했고 잘못된 선택을 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앞으로 안 그러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여곡절 있는 인생이지만, 그런 제가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걸." 

지난 3월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이 날에 맞춰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정한 성별에 따라 공개적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한 새 규정을 발표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트랜스젠더 개인과 공동체의 성과와 회복력을 기리고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변희수 하사는 군복무를 거부당했고,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프레시안>은 트랜스젠더 여성 이예나 씨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그렇듯,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고민은 멀고 해야만 하는 일은 막막하다. 온몸으로 부딪쳐 이뤄낸 성취의 순간도 있었고 적당히 타협하고 포기한 순간도 있었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오늘도 그걸 배워간다. 종종 내 선택이 아닌 일들의 결과를 책임지고 때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 앞으로의 나날들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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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프레시안 :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이 얘기를 꼭 해야 할 거 같다.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왜곡 인터뷰를 당했다고 했다. 

이예나 : 그런 식으로 당했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었지만 내가 직접 당한 건 처음이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 트랜지션 과정, 이런 걸 이야기하자 해서 응했다. 정작 방송에는 내가 한 말의 앞뒤가 다 잘리고 내가 마치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매매는 당연한 거니까 이해해달라"고 말한 것처럼 나왔다. 너무 화가 났다.

나 같은 트랜스젠더 여성도 그렇고 아마 모든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 그럴 거다.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때 정말 조심스럽다. 내가 한 이야기가 트랜스젠더 여성 전체의 이야기가 된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래서 신중하게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답한다. 언론이 그런 식으로 기만하는 게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고 충격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변희수 

프레시안 : 고(故) 변희수 전 육군하사를 추모하는 영상을 올렸다. 이전까지 무거운 주제를 꺼낸 적 없던 거 같은데 이유가 있나. 

이예나 : 변 전 하사의 비보가 처음 전해졌을 때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변 전 하사의 이름이 올라갔다. 기사도 많이 나오고. 그런데 욕설이 가득했다. 기사는 쏟아져 나오는데 욕밖에 없었다. 그게 너무 안타깝고 슬펐다.

지난해 변 전 하사가 커밍아웃했을 때,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다시 군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군 조직이 그랬다. 불합리하고 꽉 막히고. 

그런데 변 전 하사는 일방적으로 수술한 게 아니었다. 국군수도병원에서 '성별불일치' 진단을 받고 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수술을 결정했다. 동료들에게 커밍아웃했고 수술을 결심했을 때는 상부에도 보고했다. 여단장·군단장까지 이를 승인하고 응원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여단장까지 나서서 수술받으러 갔다 와도 된다는 데, 수술 잘 받고 오라는 데 당연히 가지 않겠나. 그런데 갔다 오니까 나가라고 했다.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을 거다. 

프레시안 : 많은 나라에서 트랜스젠더의 복무를 허용하고 있는데, 우리 군은 논의조차 없었다는 데에 비판이 있었다.

이예나 : 어떤 사람들은 변 전 하사가 군법상 문제가 될 거란 걸 알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알았다 한들 사람의 삶이라는 게 '문제될 거 알았으니 다 감수할 수 있어', '문제될 거 알았으니 무슨 일이든 다 감수해', 이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것, 군인이고 싶은 것, 조직과 상사를 믿은 것. 그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 누구에게 피해를 준 건가. 군인이면 충성심 있고 잘 싸우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다. 나는 군대에 다녀왔고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일로 군에 실망했다. 

변 전 하사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고를 떠나서, 그가 겪은 일련의 과정들은 개인이 홀로 감당하기에 많이 힘들었을 거다. 23살밖에 안 됐는데.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욕으로 가득 찬 글들을 보니까 새삼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었다. 세상을 떠났지만, 하늘에서라도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 혼자 아니다, 고생했다' 이렇게 전하고 싶었다.

변 전 하사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그런 사람들에게 슬픔을 드러내고 변 전 하사를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추모 영상을 올리면서 댓글창을 열어놓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거기서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트랜스젠더, 내가 그거였다." 

프레시안 : 성소수자 관련 이야기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기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중요한 정도에 비해 '성소수자의 청소년기'는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다. 트랜스젠더 여성, 이예나의 청소년기는 어땠나.

이예나 : 글쎄다. 특별할 게 없었다. '순응하고 살아온 10대'라고 하고 싶다. 조용하고 평범하고, 친한 친구들 무리가 있었고 공부 열심히 하고. 

나는 그렇게 막,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사회적으로 흔히 말하는 '여성스럽다'고 할 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운동을 좋아했다. 특히 축구. 

그런데 실체를 모르는 그런 게 있었다. 설명하기 힘든 거. 중학교에 입학할 때였다. 처음 교복을 입는데 그게 그냥 싫었다. 내가 여성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뭔지 모르겠는데 그냥 싫었다. 어색하고 불편했다.

프레시안 : 학교는 성별 이분법이 강력한 공간이다. 교복도 그렇고 '남학교', '여학교' 이렇게 나뉘어있다. 성별로 갈려서 또래문화를 형성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는 의미인가.

이예나 : 나는 1985년생인데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트랜스젠더'라는 단어조차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내가 게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게이인 분들에게 죄송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게이라는 건 거부감이 들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기억에 남는 게, 꿈속에서 항상 내가 여자였다는 거다. 드레스 입고 남자를 만나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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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프레시안 : 무의식적으로 여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 같다. 그럼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는 어떻게 알게 됐나.

이예나 : 연예인 하리수였다. 하리수가 미디어에 등장한 게 2000년대 초반,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에 공중파 9시뉴스에서 크게 다룰 정도로 화제가 됐다. 언론이나 예능이나 할 것 없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설명을 듣는데 꼭 내 얘기 같았다. 

물론 그 당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 요즘은 안 그렇지만 그때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러웠다', '여자 옷을 좋아했다', '인형을 좋아했다', 이렇게 묘사했다.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그랬을 거다. 

그런 부분만 빼면 나머지는 내 얘기 같았다. '아, 내가 저거구나'하고 그때부터 트랜스젠더에 대한 자료를 찾아다녔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내가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가 미친 줄 알았다.

프레시안 : 고민이 많았을 거 같다. 그때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라 정보를 찾기 더 힘들었을 거 같다. 온라인 커뮤니티도 없었을 텐데 그런 고민을 나눌만한 친구나 주변 어른들이 있었나. 

이예나 :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알게 됐지만 아무에게도 말은 못했다.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이 막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다. 미디어에서는 매일같이 '트랜스젠더', '하리수' 얘기가 나오는데 지금 기준에선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다. 인권의식도 많이 부족했고. 

어딜 가나 하리수 얘기가 나왔다. 학교도 그랬다. 그런데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않나,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하고 정제되지 않은 말로 그걸 표현한다. 

하리수를 두고 하는 이야기들, 성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표현들. 그 말들이 다 나한테 꽂혔다. 나한테 하는 얘기 같았다. 절대 드러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다.

"트랜스젠더의 친구? 친구가 그냥 친구지 뭐." 

프레시안 :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정체성 이야기는 전혀 안 했나. 유튜브 영상에 종종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출연하던데 그 친구들에게는 언제, 어떻게 커밍아웃 했나. 

이예나 :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됐을 때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연락을 다 끊었었다. 성확정수술(성전환수술)을 하고 법적 성별 정정도 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했다. 내가 남자였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그러다 한 친구가 결국 나를 찾아냈다. 걔가 내 방송에 가끔 나오는 그 친구다. 나는 새 인생 살겠다고 연락 끊었는데, 친구들은 서울 간 애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니까 많이 걱정했던 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부터 "혹시 나쁜 짓 하는 거냐", 계속 추궁해서 결국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는 그때 커밍아웃했다. 그 친구들은 내 트랜지션 과정을 전부 지켜봤다. 요즘도 같이 술 마시면 우스갯소리로 "내 친구 돌려놔라" 이런다. 

프레시안 : 트랜지션이나 커밍아웃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항상 '관계의 단절'로 이어졌던 것 같다. 커밍아웃 후에도 유지된 관계는 새로운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한 노력이 있나. 트랜지션 과정을 지켜본 친구들은 남다를 거 같다.

이예나 : '찐우정'이라고 하지 않나. 정말 친하다. 가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그 친구들을 만났던 일상을 브이로그로 올리기도 했다. 트랜스젠더의 친구라거나 트랜스젠더와의 우정이라고 특이하고 남다르진 않은 것 같다.

그중 한 명이 곧 결혼한다. 예비신부와 만남을 내가 주선했다. 예비신부가 해준 얘긴데, 친구들이 "신랑 어떻게 만났어?"라고 물어보면 "응, 아는 언니 불X 친구"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프레시안 : 반대로 관계가 단절됐다가 트랜지션 후에 이어진 친구도 있나. 

이예나 : 중학교 때 친구들은 그때 연락이 끊겼다.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못했다. 그러다가 재작년에 한 명이 결혼하면서 연락이 닿았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연락을 했다. 신기했던 게, 그 친구가 "얘들아, 옛날에 연락 끊었던 ○○이가 다시 만나고 싶대. 우리한테 많이 미안해하고 있대" 그러니까 한 애가 갑자기 "왜? 걔 여자 됐어?", 이랬다는 거다. 

나중에 물어보니까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럴 거 같았다고 하더라. 촉이 좀 있었나 보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는 그렇게 연락이 닿아서 잘 지내고 있다. 

프레시안 : 전자공학 전공이라고 들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거 같다. 스마트폰이 도입되기 훨씬 전에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했다고 들었다. 그런 방향으로 하고 싶었던 게 있었나. 

이예나 : 특별히 없었다. 진로 고민도 특별히 안 했다. 점수 맞춰 갔다. 

사실 대학에 큰 뜻이 없었다. 다니다가 그만둘 생각도 있었다. 나는 군대도 갔다 왔는데, 남자로 살아보려고 간 거였다. 남자로 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대학교 3학년쯤까지 그런 거 같다.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잘 모르는 어른들이 그런 말 하지 않나. '어려서 헷갈리는 거다', '군대 갔다 오면 괜찮을 거다.' 그런 말들을 접하다 보니까 나 스스로도 의심이 됐다. 내가 착각하는 건가 싶었다. 그냥 소위 말하는 '여성스러운' 남자인 건 아닐까 하고.

그래서 노력했다. 나 스스로 확신을 가지기 위한 노력이었다.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는데 결국 안 되겠더라. 남자로는 도저히 못 살 거 같았다.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되면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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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정체성 고민을 많이 한 거 같다. 남성 정체성을 가지고 남성을 좋아하는 '게이', 사회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성격을 가진 남성, 남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여성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젠더 여성'. 다 다른 건 알겠는데 그 사이에서 고민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어땠나. 구별하는 기준이 있나. 

이예나 :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하고 전문적인 상담도 꼭 받아야 한다.

성확정수술 후에 후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니었던 사람들이다. 단편적으로 '나 여자 옷이 좋아! 트랜스젠더인가? 수술해야지!' 이런 거다. 그런데 여성인 게 아니라 그냥 여자 옷을 좋아하는 남성이었던 거다.

또는 '나는 남자가 좋아! 나는 끼순이야! 그럼 여자인가보다! 수술해야겠다!' 근데 애교 많은 남성인 거다. 수술 다 하고 나서야 '나는 여성이 아니라 그냥 그런 성격의 남성이었구나' 하고 깨닫는다면 말 그대로 '미친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트랜스젠더 여성이지만 자기가 생각했던 삶이 아니어서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수술만 하면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은 거다. 다 똑같은 헬조선이고 먹고 살기 팍팍하고. 트랜지션이 너무 몸 변화, 의료적 트랜지션만 조명되니까 사회적인 걸 많이 놓친다. 

트랜지션, '몸을 바꾸다' 그리고 

프레시안 : '트랜지션'에 대해 설명해달라. 트랜지션이 뭔지 궁금해하는 시스젠더(비트랜스젠더)가 아니라, "제가 트랜스젠더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설명한다면? 

이예나 : '의료적 트랜지션'과 '사회적 트랜지션'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싶다. 의료적 트랜지션은 흔히 알고 있는 호르몬치료 받고, 성확정수술 받고, 몸을 바꾸는 거다. 

물론 미디어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설명하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너무 자극적이고 단선적이다. 마치 '어디까지 의료적 조치를 받으면 몇 퍼센트 여자 완성!' 이런 식이다. 그런 관점은 위험하다.

사회적 트랜지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의료적 트랜지션이 몸이 변하는 과정이라면 사회적 트랜지션은 사회에 녹아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나를 드러내고, 내 몸이 변하고, 내가 맺어온 관계가 변하는 과정. 그리고 변한 모습으로 사회에 자리잡아 살아가는 과정. 

프레시안 :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뭐가 다른가. 몸을 바꾸면 자연스럽게 되는 거 아닌가.

이예나 : 커밍아웃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먼저 나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닌 다른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가진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 점을 분명히하고 시작해야겠다.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커밍아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아예 숨기고 남성으로 살아간다면 모를까,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하면 변화가 겉으로 드러난다. 호르몬치료를 시작하면 사람이 가진 느낌이 달라진다. 몸의 선이라고 해야 할까, 체취나 아우라? 뭐가 됐든 그런 전반적인 느낌이 달라진다.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지 않는다.

프레시안 : 트랜지션을 시작하면 그거 자체가 커밍아웃이라는 의미 같다.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이라면 철저히 숨기고 살다가 어느 날 가족이나 친구에게 "나 사실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고백하는 걸 상상했다. 

이예나 : 성소수자라고 다 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니까. 

(의료적) 트랜지션, 커밍아웃, 트랜스젠더 여성 정체성, 모두 다 다른 개념이라는 걸 짚고 넘어가야겠다. '트랜스젠더 여성' 정체성에 의료적 트랜지션이 필요한지 여부도 의견이 다양하다.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개인적으로 나는 커밍아웃은 그저 '출발선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트랜지션의 출발선. 커밍아웃을 못하면 시작을 못 한다.

그런 점 때문에 요즘 아이들을 보면, 커밍아웃 고민을 이른 나이에 한다. 청소년기에 몸이 많이 변하니까. 이 시기에 몸에 생기는 '남성적인 특징'은 없애기 힘들다. 남성호르몬은 일찍 억제하는 게 좋다. 그런데 청소년이 호르몬치료를 시작하려면 부모의 허락이 필요하다. 

"어머님 아버님, 그냥 받아 들이세요." 

프레시안 :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해야 사회적 트랜지션도 할 수 있고, 그러려면 빨리 커밍아웃해야 하는 거 같다. 그런데 예전에 유튜브 방송에서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예나 : 그건 좀 설명이 필요하다. 무조건 '언제 해라', '하지 말아라' 이런 건 없다. 그때 내가 하지 말라고 했던 건 커밍아웃을 고민했던 사람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가장 완벽한 시나리오는, 청소년기에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고 의료적 트랜지션을 일찍 시작하는 거다. 10대 시절에 상담과 호르몬치료를 받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성확정수술을 하는 거. 그런데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일단 부모가 빨리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게 문제다. 

프레시안 : 부모가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인다는 거 자체가 상상이 안 된다. 

이예나 : 커밍아웃하고 더 안 좋아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대부분 사이가 틀어진다. 부모 자식 간 인연이 끊어지는 것보다 더 나쁜 건 아이가 집을 나가는 데 부모가 끝까지 찾아다니는 거다. 한국은 부모가 원하면 집 주소를 알려준다. 아이는 집 나가서 어떻게든 자기가 돈 벌어서 수술하려고 하는데 부모는 아이가 어디에 있든 어떻게든 찾아낸다. 끌고 와서 집안에 가둬놓고 어떻게든 '고치려' 하는 거다. 

그런데 그건 고쳐지는 게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과학계와 의료계가 이걸 정신병으로 놓고 고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몸 바꿔 주는 게 최고다' 이거다. 

그걸 꼭 말하고 싶다. 고쳐지는 게 아니라는 거. 그건 병이 아니다. 잠깐 헷갈리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쁜 애들'과 어울려서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가 상담을 올 때마다 항상 말한다. "빨리 받아들여야 아이가 살아갈 수 있다." 

프레시안 : 종합하면 '부모가 받아들인다는 확신만 있으면 빨리 커밍아웃하는 게 좋다'는 말 같다. 그냥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린다. 

이예나 : 가장 안전한 건 수술비 다 모으고, 혹은 수술 다 마치고 커밍아웃하는 거다. 수술하고 커밍아웃해서 실패한 경우는 못 봤다. 

내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친가 외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보수적인 종교의 신자들은 "성소수자를 반대한다"고 한다. 내 가족, 친척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수술하고 성별 정정까지 마치고 나타났을 때 많이 놀랐지만 결국엔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성소수자를 인정한다', 이렇게까지 변하진 않았다. "너는 여자니까 네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동성애가 아니다"라고 한다. 어쨌든 나한테는 받아들였다는 게 중요하니까. 

대신 그러면 늦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돈 벌어도 빨라야 20대 중후반이다. 나는 대학교 다니면서 중간에 군대도 갔다 왔다.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해서 돈 모으고 수술한 게 30대였다. 이전까지 해온 것, 쌓아온 커리어, 직장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치킨이랑 떡볶이, 술을 좋아한다. 가끔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상담해준다. 예전에 겪은 재밌는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깔깔거린다. 직업은 수학 강사.

코로나 전까지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친구가 많은 편이다.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도 했다. 때때로 남자친구와 여행도 다녔다. 집에만 있다 보니 살이 쪄서 최근에 운동을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의 운영자, 이예나 씨 얘기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지만 그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되면 뭔가 달라진다.

호르몬치료 등 의료적 트랜지션(성별을 바꾸는 과정)을 거치다 2019년, "출생신고는 (주민등록번호 끝자리 시작번호) 1로 했지만, 사망신고는 2로 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태국에 다녀왔다. 법적으로 성별 정정까지 마치며 국가가 인정한 '여성'이 됐다. 그리고 직업을 잃었다. 꽤 잘나가는 강사였지만, '원래 남자였던 여자' 선생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완전히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시작하면 안 되는 거였나. 굳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필요가 있었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일상을 드러내고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이유가 있나. 

"저는 그냥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이 '별반 다를 거 없네', 그리고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렇게도 사네'라고 생각할 수 있게.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실수도 했고 잘못된 선택을 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앞으로 안 그러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여곡절 있는 인생이지만, 그런 제가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걸." 

지난 3월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이 날에 맞춰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정한 성별에 따라 공개적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한 새 규정을 발표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트랜스젠더 개인과 공동체의 성과와 회복력을 기리고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변희수 하사는 군복무를 거부당했고,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프레시안>이 트랜스젠더 여성 이예나 씨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그렇듯,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고민은 멀고 해야만 하는 일은 막막하다. 온몸으로 부딪쳐 이뤄낸 성취의 순간도 있었고 적당히 타협하고 포기한 순간도 있었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오늘도 그걸 배워간다. 종종 내 선택이 아닌 일들의 결과를 책임지고 때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 앞으로의 나날들을 기대하면서. 

[인터뷰] ① 바로가기 : 트랜스젠더 유튜버 '쌀이없어요' 이예나 "트랜지션, 여자로 몸을 바꿨는데 별반 다를 게 없네?"


몸 바꾸기 보다 더 중요한 것

프레시안 : '사회적 트랜지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내가 변하고, 내가 맺은 관계가 변하고, 변한 모습으로 사회에 자리잡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예나 : 우선은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일 거다.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야. 남자로 관계를 맺었지만, 앞으로 이렇게 변할 거야" 

프레시안 : 어차피 성별 바뀌고 신분도 달라지는데 그렇게 할 필요를 못 느낄 거 같다. 

이예나 : 가끔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치고 완전히 새 인생을 살겠다며 지금의 삶을 소홀히 하는 사람을 본다.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다. 

과거와 완전히 단절할 수 있나. 과거의 나도 난데. 트랜지션 과정도 소중한 경험이다.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고 인연 끊고 하는 게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만 결국 자기한테도 상처다. 

극단적인 사례인데 40대에 들어 성확정수술을 마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남성으로 살면서 결혼도 했었다. 결국 트랜지션을 결심하고 당시 아내에게 고백했다. 결혼생활을 다 정리하고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했다.

이런 게 사회적 트랜지션의 첫 단계 아닌가 싶다. 물론 정체성을 속이고 결혼까지 하는 건 큰 잘못이다. 절대 그러면 안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내 몸만 바꾸는 게 아니라 주변에 그걸 설명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거다.

프레시안 : 이전의 사회적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 맺는 것. 그리고 또 뭐가 있나. 

이예나 : 그리고 중요한 게 '커리어'. 변한 후에 돌아올 자리를 미리 닦아놓아야 한다. 학교가 됐든 회사가 됐든 돌아가는 것. 혹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 이게 돼야 먹고 산다. 

성확정수술을 하고 법적으로 성별을 정정하는 건 중요한 목표다. 사회적 트랜지션의 완성은 수술 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상담하는 아이들에게 꼭 얘기해준다. "수술은 골인이 아니다." 

성별 정정만 완료하면 꽃길이 펼쳐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성별 정정 후에 펼쳐지는 건 '돈 없고 나이 먹고 경력 없는' 현실이다. 

프레시안 : 성별 정정만을 목표로 두지 말란 뜻인가. 

이예나 : 법적 성별 정정 후에 '번아웃'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 목표만 쳐다보면서 살았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이제 어떻게 살지" 싶은 거다. 

사소한 거라도 돌아갈 자리를 만들어두라고 하고 싶다.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것,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 하다못해 게임 캐릭터라도.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버티질 못한다. 

종합하자면 '사회적 트랜지션'은 여러 가지를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하고 싶다. 내가 맺은 사회적 관계를 정리하고, 변한 후에 어떻게 살아갈 지를 정리하는 거다. 

프레시안 : '커리어', '돌아갈 자리'를 강조한다. 그냥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예나 : 사회적 트랜지션이 정말 어려운 이유다. 일단은 한국에 법적 성별 정정까지 완료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어떻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내가 본 많은 경우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은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 사람도 결국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성확정수술도 모두 끝내서 겉모습은 여성이다. 동료와 상사 모두 그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못했다. 성별 정정이 품위유지위반인가, 그런 거에 걸린다고 했다.

"예쁜 사람이 아니라 여성이고 싶다…외모는 '갑옷'" 
 

프레시안 : 의료적 트랜지션보다 사회적 트랜지션이 훨씬 어렵게 들린다. 돌아갈 자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건 뭔가.

이예나 : 앞에서 '사회에 녹아든다'고 설명했는데, 결국 외모가 제일 중요해진다. 어쩔 수 없더라. 사람들이 보기에 외모가 '여성스러우면' 자리 잡기가 쉽다. 외모가 성별을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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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프레시안 : 성확정수술 전에 외모부터 갖추라는 건가. 

이예나 : 사람이 다 그렇지 않나. 누군가의 성기를 확인하고 성별을 판단하지 않는다. 외모에 대한 성별화된 기준이 분명히 있다. 사회에 녹아들려면 이 기준을 무시할 수 없다. 

직장의 남성 동료, 상사, 아무나 떠올려 봐라. 그 사람이 한두 달 뒤에 "나 사실 여자야"라고 커밍아웃한다면 어떨 거 같나. 수술도 다 했다고 한다면? 존중해야 하지만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무턱대고 성확정수술부터 한다고 해보자. 키는 180이 넘고 근육질에 수염자국이 가득하다면? 사람들이 보기엔 남성인데 자기는 여성이라고 한다. "나는 여성이다"라고 주장한다고 여성으로서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지는 건 분명 아니지 않나. 결국엔 당사자만 더 상처받는다. 주민등록번호도 바꾸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려고 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남성으로 대하니까. 

내 경험상 세상 사람들은 바로 성확정수술부터 한 사람보다 성확정수술은 안 했어도, 사회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외모를 가진 사람을 더 여성으로 생각한다. 수술하고 성별 정정하는 게 다 사회에 녹아들려고 하는 건데 의미가 없어지지 않나. 

프레시안 : 사회적 트랜지션의 조건은 외모라는 뜻인가. 여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성형수술해서 예뻐져야 한다는 말 같다.

이예나 : 트랜스젠더 여성은 성형수술을 꼭 해야 하고, 반드시 예뻐야 하냐고 물어보는 건가.

예뻐야 여성이고, 여성은 예뻐야 한다는 건 절대, 절대 아니다. 사회가 여성의 외모에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게 여성의 삶을 힘들게 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것도 안다.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외모는 '갑옷'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템'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예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여성'으로 살고 싶다. 그런데 "네가 왜 여성이냐"라고 묻고 내가 왜 여성인지 증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외모를 강요받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세상이 바뀌어야겠지만 당장의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는 없으니까. 어떤 기준이 있다면 옳고 그른 걸 떠나서 그걸 맞추는 거다. 조용히 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너무 나쁘게 보지 말아 달라고 하고 싶다.

꼭 해주고 싶은 말 

프레시안 : 예전에 "트랜스젠더이긴 하지만 트랜스젠더이기만 한 건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이예나 : 트랜스젠더인 지인들을 만나면 함께 하는 말이 있다. "인생 최대 업적이 성별 정정인 채로 살지 말자"라고. 무슨 말이냐면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이 나를 표현하는 1번으로 두지 말라는 거다. '눈 밑에 점이 있다', '영어를 잘 한다', 그런 것처럼 정체성도 내가 가진 개성 중 하나가 되게 하는 거다.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에 갇히지 말라는 뜻이다.

트랜지션 중에는 많은 것이 변한다. 인간 관계의 변화가 정말 크게 느껴질 거다. 주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 떠나는 사람도 있다. 심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피해의식을 가지지 말라는 거다. 

프레시안 :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과정인 거 같다. 아까 몸만 바꾸는 게 아니라 주변에 그걸 설명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일일이 나를 설명하는 거 자체가 피곤하고 힘든 일인 거 같다. 

이예나 : 피해의식을 가지지 말라고 한 건 상처받지 말라거나, 스스로 노력해서 상처를 극복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려운 이야기인데, 트랜지션 과정이 길고 힘든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내가 트랜스젠더인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거다. 법적 성별 정정을 모두 마치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울감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내 모습이 변해가면서 친구들이 적대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게 꼭 내가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일까. 평소부터 내가 싫었을 수도 있고 내가 커밍아웃하는 과정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나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모든 인간 관계는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싸우고 인연이 끊길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도 있다. 나의 모든 문제, 나쁜 상황의 탓을 '트랜스젠더'로 돌리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런 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니까. 

프레시안 : 나쁜 말을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떠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에게 더 엄격하고 높은 기준을 제시한다. 

이예나 :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직업 좋고 잘나가면 주변에 사람이 많아지고, 망하면 다 떠난다고. 트랜스젠더도 똑같다. 내가 잘나면 된다. 

실력으로 커버하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에 갇히지 말라는 말이다. 혼자 집에 틀어박혀서 남자 모습으로 '난 여자야, 여자가 될 거야. 빌어먹을 세상, 웅얼웅얼…' 이러고 있으면 결국 내 손해다.

인생은 길고 시간은 소중하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거 아닐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하고 싶다.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멋있는 법이다. 누구나 밝고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체성보다 중요한 가치는 많다.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것, 정보의 계승 

프레시안 : 수술 후에 법적 성별 정정 과정은 어떤가. 복잡할 거 같다. 

이예나 : 복잡한 것보다는 정보가 계승되지 않는 게 큰 문제다. 법적 성별 정정까지 완료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이 바닥을 뜨'니까. 검색해서 나오는 건 준비해야 하는 서류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서류가 아니라 과정이다.

예를 들어, 준비해야 하는 서류 중에 '의사확인서'가 있다. 이 서류는 수술한 태국 병원에서 발급해준 거랑 한국의 산부인과에서 진단받은 게 필요하다. 나한테 물어본 사람 중에 "산부인과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하냐"는 사람도 있었고, "태국에서 받은 확인서는 영어인데 번역해야 하냐"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마다 막히는 부분, 모르는 부분이 다 다르다.

혹은 "보험 만료가 언제인데 성별 정정 시기랑 겹쳐도 괜찮을까", "어느 법원에서 정정하는 게 빠를까" 이런 정보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그런 정보가 모이는 창구가 없다. 

그리고 성별 정정 자체보다는 성별 정정 후 그동안 가진 걸 다 바꾸는 게 힘들다. 개명은 잘 돼있는데 주민등록번호는 잘 안 돼있다. 나는 주식 계좌도 아직 못 바꿨다. 바꾸려면 직접 가야 한다. 특히 카카오톡. 카카오톡,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다 다르다. 하나씩 바꿔야 하는데 또 통신사마다 방법이 다르다. 

프레시안 : 법적 성별 정정 후에 달라진 게 있나. 

이예나 : 주변 사람들의 태도 보다는 내가 달라진다.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 당당해진다. 

예전에 여성인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숙소의 샤워실이 공용이었다. 그때 나는 가슴 성형 수술까지는 했는데 성확정수술은 하기 전이었다. 

친구들은 날 여성으로 대했지만 내가 여탕에서 같이 씻을 수는 없지 않나. 애들은 '뭐 어떠냐' 했는데 내가 안 괜찮았다. 그럴 때마다 혼자 따로 씻거나 안 씻었다. 성확정수술을 마치고 나면 그런 게 없어져서 편하다. 사람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한국 사회가 보수적이지 않나.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분명 심하다. 그런데 성확정수술을 마친 사람은 금방 받아들인다. 외국에서는 보통 트랜스젠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수술을 해도 싫어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존중할게' 이런 반응이다. 

프레시안 : 상담을 많이 하던데 이유가 있나. 

이예나 : 정보를 계승해주고 싶다. 한국은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친 사람도 적은데 그 사람들 대부분 드러내지 않고 산다. 어떤 사람이 트랜지션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정보가 되어 다음에 트랜지션 중인 사람에게 전해지고. 이런 식으로 정보가 누적돼서 계승돼야 하는데 성확정수술 끝나고 성별 정정 끝나면 다 사라진다.

두 번째는 트랜스젠더 여성 당사자보다 그 부모를 위해서다.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트랜스젠더를 인정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나에게 상담하는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얘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입시 학원의 강사이기도 하다. 중·고등학생을 가르치고 학부모 상담하는 게 원래 내 일이다. 게다가 나는 트랜스젠더 여성이고, 법적 성별 정정도 마쳤다. 상담하기 딱 좋지 않나. 

프레시안 : 상담하는 아이들은 어떤가. 요즘은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성화돼서 정체성을 고민하고 관련된 정보를 구하는 게 예전보다 쉬울 것 같다. 

이예나 :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안 해서 어떤지는 잘 모른다. 인터넷이 있다는 거 자체가 큰 차이일 거 같다. 인터넷이 없을 때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발품 팔고 알음알음 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성인이 돼야 한다. 늦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에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정보를 찾고 인생계획을 세워 놓는다. 20살 되면 뭐부터 하고 돈은 이렇게 모으고 어떻게 달려야겠다, 이게 있다. 제일 부러운 건 군대 거의 안 가는 거. 

그리고 요즘 애들이 다르다고 느낀 건, 뭐가 많아졌다. 논바이너리, 에이섹슈얼, 퀘스처너리 등등.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이해 못 하는 부분도 있다.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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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중요한 건 '먹고 살기' 

프레시안 : 성별 정정 이후의 삶은 어떤가. 마냥 꽃길은 아니라고 했다. 

이예나 : 아무래도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리니까. 하던 분야에 복귀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대부분 성별 정정을 하고 나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힘들다. 한순간에 확 내려앉는 경우도 많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든가, 프리랜서를 하는 사람도 있다. 국비 지원 학원 다녀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원래 직업을 살리는 건 힘들다는 거. 이런 거 때문에 성별 정정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자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졌다면 성별 정정을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지 않을까. 전문직도 그렇고. 의사인 경우엔 커밍아웃부터 별문제가 없었다. 의사들은 성별불일치에 대해 배우니까 '트랜스젠더 여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게 아니라 '성별불일치는 수술로 치료해야 한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거다. 그 사람은 교수가 나서서 부모를 설득했다.

커리어가 능력을 증명해주는 분야도 복귀가 수월한 편이다. 어떤 사람은 디자이너인데 성별 정정하고 다니던 회사에 복직했다. 공직은 좀 다르다. 

법적 성별 정정까지 완료하면 살아갈 길은 많다. 살기 팍팍하겠지만 성별 정정 안 하는 거보다 사는 게 쉽다. 성별 정정을 안 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말 힘들다. 

프레시안 : 유흥업소에서 많이 일할 거라고 생각했다. 유튜브도 그렇고,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이야기 속에는 유흥업소가 많이 등장했다. 

이예나 : 미디어라는 특성이 있지 않나. 전체 트랜스젠더 여성 중에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수라고 말하고 싶다. 우스갯소리 하자면 일한다고 다 써주는 곳도 아니다. 외모가 필요한 직업이고, 말도 잘 해야하고, 성격도 당차야 한다. 

예전엔 아무래도 정보를 얻을 곳이 그런 곳이었다.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드러내고 모인 곳이 유흥업소밖에 없었다. 아까 말했던 의사, 디자이너, 트레이너,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고 연락할 방법도 없다.

프레시안 : 드러내지 않고 사는 건 어떤 건가. 

이예나 : 가장 원하는 건 '평범한' 삶이다. 여성으로 사는 거.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무리 평생을 여성 정체성으로 살아왔다 해도, 여성사회에 들어가서 여성으로 사회화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겪어볼 수 없었으니까. 그런 걸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게 크다. 

'들키지 않게' 조심하는 게 있다. 물론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한다면 정체성을 밝혀야 하지만 굳이 직장을 다니면서 정체성을 밝힐 필요는 없으니까. 우선 목소리 신경 쓰고 목젖 안 보이게 노력하는 거. 목젖은 수술로도 안 되는 부분이라 정말 난감하다. 어떤 사람은 회식 때, 다 같이 마실 때만 마신다. 무조건 원샷. 남겼다가 '밑잔 마셔라' 이럴까 봐.

생리 관련한 정보도 알아둔다. 생리 주기 앱을 설치하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어떤 사람은, 가끔 여학생들이 생리 관련한 걸 물어볼 때를 대비한다고 한다. '선생님은 얼마나 아프세요', '선생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진통제 뭐가 좋아요'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프레시안 : 아우팅 당하는 경우도 있나.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이예나 : 의료적 트랜지션 중에는 겉모습이 변하니까 두려움이 있다. 내가 밝히지 않아도 트랜스젠더라는 게 알려지고 직장 내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학생이면 따돌림이나 폭력을 당할 수도 있고. 

법적 성별 정정을 마쳤다면 크게 의심을 사는 일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트랜스젠더일 거다'라는 생각을 잘 안 한다. 키가 크면 '키 큰 여자구나', 덩치 크면 '덩치 큰 여자구나', 목소리가 허스키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말지 않나. 두 사람을 놓고 "누가 트랜스젠더인지 맞혀봐"라고 하면 맞힐 수 있겠지만. 눈에 띄지 않게,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된다.

걱정하는 건 새로운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보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거다. 과거를 완전히 지우고 새 삶을 살고 싶은데 그 연결고리가 어디서든 나타나는 거. 지운다고 지웠지만 자기도 모르게 남긴 흔적이 있는 거.

그런 걱정 때문에 많이 전전긍긍한다. 매일 전화하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나 걸리면 어떡해" 이러면서. 그럼 "아니라고 해"라고 말해준다. 아니라고 하면 끝이지 뭐. 알 방법도 없다. 초본을 떼 볼 건가, 유전자 검사를 할 건가. 어떤 남성들은 "성관계해보면 다 안다"라고 하는데, 트랜스젠더 여성을 만나 본 적도 없을 거 같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프레시안 :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있나. 

이예나 : 지금은 유튜브 채널로 알려졌지만 수학 강사이기도 하다. 강의를 계속 하고 싶다. 얼굴이 알려져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학원에 자리를 구했는데, 트랜스젠더라는 게 알려져서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학원 앞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보더니 십자가로 막 때렸다. 그래서 결국 엎어지고, 학원을 직접 내려고 했다. 작년 2월에 개원할 예정이었는데 2019년 9월에 내가 안 좋은 일로 날아갔다. 인터넷 강의하던 것도 날아가고 개원 계획도 엎어졌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하고 싶다.

프레시안 : 많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정체성을 숨기고 산다고 했다. 자신을 드러낸 이유가 있나.

이예나 : 나는 인권운동가는 아니지만,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다. 접근 방법이 좀 다른 거 같다. 이렇다, 저렇다 주장하는 것보다는 내 삶을 보여주는 게 좋은 거 같다. 그게 최고의 설득이라 생각한다. 

내 유튜브 채널 콘텐츠 중에 '쌀혼자산다'라는 브이로그 시리즈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시작했다. "트랜스젠더지만 다르지 않아요!", "똑같이 대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전에 남자친구와 여행가는 내용으로 '내 여자친구는 트랜스젠더입니다'라는 시리즈를 만들어 올렸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랑 데이트하는 건 어떨까 궁금해서 봤겠지만 사실 별거 없다. 여기저기 구경 다니고 쇼핑하고 맛있는 거 사 먹고 투닥거리고. 보는 사람들도 '똑같네?', '별거 없네'라고 느끼게.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내 삶을 계속 보여줄 거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실수한 적도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다. 방송을 쉬게 됐을 때 유흥업소 쪽에서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다 거절했다. 그저 앞으로는 안 그런 거, 열심히 사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싶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롤모델이 없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노년이 어떤지 모른다. 유명한 사람이 하리수 정도인데 하리수도 40대다. 70대, 80대까지 늙어가는 삶이 있어야 한다. 그런 걸 하고 싶다.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내 삶이 우여곡절이 많은 게 잘 됐다 싶기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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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나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쌀이없어요'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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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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