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라는 칼날, 언제까지 악의에 휘둘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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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의 트랜스젠더바는 단지 유흥의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숨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안전지대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들이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그 위협은 거대한 외부의 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내부에서 벌어지는, 더 은밀하고 악의적인 칼끝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들은 자신이 일했던 업장을 상대로 ‘엿 먹으라는 식’의 신고를 한다. 관계가 틀어졌다는 이유, 개인적 감정이 개입됐다는 이유, 혹은 경쟁 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악의적 신고가 ‘단순한 민원’의 형태로 받아들여져 구청과 경찰이 그대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무허가 1종 유흥시설, 위생 기준, 안내도 미비 등등의 이유로 단속이 이루어지지만, 실상은 ‘신고자가 단순히 엿 먹이고 싶었다’는 개인 감정이 발단인 경우가 많다. 어떤 업장은 그 자리에서 즉시 영업정지를 당하고, 어떤 이들은 단속 과정에서 경찰의 신원조회까지 받는다. 그리고 그 뒤에는 늘, 한때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이 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신고라는 제도를 악의적으로 활용한 사람의 책임은 어디까지 묻고 있는가? 도리어 아무런 검증 없이 단속부터 나서는 행정기관의 방식은 어떤 정당성을 갖는가?
물론 위법한 요소가 있다면 점검은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 ‘악의적 신고’라는 전제가 붙는다면, 이 구조는 이미 제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단속은 불법을 단속해야 하는 것이지, 개인 감정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업장을 신고한 이들은 종종 자신을 ‘정의로운 내부 고발자’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그 업소에서 일하던 시절, 아무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고, 함께 수익을 나누고, 영업에 동참했던 이들이다. 감정이 틀어지고 난 후에야 “사실은 다 불법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배은망덕을 넘어선 폭력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이태원의 바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신규 채용은 주저하게 되고, 내부 갈등은 커지며, 신뢰는 점점 무너진다. 누구와 함께 일하더라도, 언제든 고발의 칼날이 돌아올 수 있다는 공포는 모든 트랜스젠더 종사자들에게 불안으로 작용한다.
지금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단속이 아니다. ‘왜 이런 신고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신고의 배경에 어떤 관계와 감정이 얽혀 있는지’를 구청과 경찰이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단속 실적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단속이 정당하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언제까지 트랜스젠더 바 업장들은 누군가의 원한 관계와 감정 싸움에 휘둘리며 하루아침에 생존권을 잃어야 하나. 제도가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면, 최소한 이런 악의적 신고로부터의 보호장치도 마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행정과 제도도 묻어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할 시간이다. 신고는 권리일 수 있지만, 악의적으로 휘두른다면 그건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는 흉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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